미서부, 같이 가줄래?
: 부부라는 이름으로 1800km 로드트립
펴낸곳 (주)푸른길
지은이 온정
정 가 14,000원
ISBN 978-89-6291-894-6 03980
사 양 130*202, 232쪽
초판 1쇄 발행일 2021년 2월 22일
분 야 에세이>여행에세이
TEL 02-523-2907
FAX 02-523-2951
Homepage www.purungil.co.kr
“난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이곳에 다시 오겠노라고.”
그리하여 내달린 1800km, 그 여정이 가져다준 모든 찬란한 순간들
꼭두새벽부터 받은 두꺼운 메이크업과 헤어를 인천공항의 한 칸짜리 샤워실에서 열심히 지우고 씻어 내며 시작되는 이들의 여행. 결혼식의 묵은 피로감을 후련하게 날려 버린 이들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혼자서는 세 번이나 다녀왔다는 미서부이다. 주변 사람들은 신혼여행인데 기왕이면 새로운 곳에 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의문을 던졌지만, 이들이 에메랄드빛 해변보다 흙빛 텁텁한 공기를 머금은 미서부 대자연을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작가 온정은 혼자 미서부로 떠났다. 그토록 꿈꿔 왔던 그랜드캐니언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신이 빚어 놓은 듯 광활하게 펼쳐진 주황색 협곡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아찔하게 패어 있는 골짜기가 저마다 그 기세를 자랑했다. 믿을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에 그녀는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이곳에 다시 오겠노라고.
그렇게 부부라는 이름으로 떠난 1800km 로드트립. 평생 남으로 살아온 둘이 하나가 되어 금세 미국 땅에 와 있다는 사실도, 결혼이란 큰일도 아직 실감하지 못했는데 눈앞에는 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정신없이 펼쳐졌다. 광활한 대자연의 웅장함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고, 애리조나의 끝없는 사막을 운전하는 순간에도 당장 내려 잡아 두고만 싶은 그림들이 연이었다. 익숙한 듯 익숙해지지 않는 그곳에서 매번 헤매며 머리와 맘을 맞대야 했고, 쩍쩍 갈라지는 피부와 진하게 자리 잡은 다크서클은 덤이었지만, 아로새겨지는 감정들만은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이 특별했다. 그렇게 반짝이던 하루가 저물고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을 바라보는 고요한 순간이 찾아올 때면 그려 보았다. 우리로 살아가며 마주할 수많은 삶의 조각들을.
『미서부, 같이 가줄래?』는 낭만과 여유가 가득한 휴양지를 뒤로하고, 광활한 미서부 대자연을 신혼여행지로 택한 이들이 펼치는 달콤 짠내 가득한 이야기를 통통 튀면서도 솔직한 언어로 담아낸 에세이이다. 다녀와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듯, 신혼여행은 마냥 설레는 다른 여행과는 달리 겨우 큰 행사를 마쳤다는 안도감, 정신없는 와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떠나는 노곤함, 다녀와서 살아 내야 할 현실에 대한 막막함 등을 함께 안고 떠난다. 이들 역시 눈앞에 펼쳐지는 아득한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마치 앞으로 펼쳐질 삶의 아득함인 양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들에 마주 서야 했으며, 부부라는 새로운 이름에 적응해야 했다. 그 여정에서 “보고, 듣고, 사랑하고, 아프고, 고민하고, 회상하고, 후회했던 모든 감각”을 기록해 담았다. 다음 포털사이트 메인에 여러 차례 올라 누적 조회수 62만을 기록할 만큼 많은 이에게 사랑받았던 브런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새로이 엮었다. 글 하나만으로도 열흘의 여정을 단숨에 끌고 나가는 온정만의 매력이 넋을 빼놓는 미서부의 풍경과 더해져 더욱 찬란해졌다.
여기서 재발하지 말아 줘, 제발!
철두철미한 두 남녀가 만난 덕에 PPT까지 만들며 준비한 여행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일은 늘 중요한 순간에 터지듯 역시나 계획대로 흘러가 주지 않았다. 신혼여행 3일 만에, 갑작스럽게 과격한 운동을 했을 때 근육이 녹으면서 생기는 질환인, 횡문근융해증이 재발한 것이다. 결혼식까지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건만 결혼식 때 신은 높은 굽의 구두, 스니커즈를 신고 강행한 트래킹 등 며칠 사이에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탓에 다리가 다시금 아파 왔다. 가뜩이나 행복만 누려도 모자랄 신혼여행에서 병이 웬 말인가 싶지만 이럴 때만큼은 무심한 대자연이 이들의 사정을 봐 줄 리 없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절경으로 꼽힌다는 앤털로프캐니언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공연히 미련하게 살아온 자신을 탓해 보기도 앞으로의 불행을 미리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여행의 특장점은 둘이라는 데 있었다. 남편은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며 날마다 성실하게 파스를 발라 주었고, 네 개나 되는 묵직한 캐리어를 도맡았으며, 걷지도 딛지도 못하는 상황이 찾아오자 아내를 업고는 사람이 빽빽한 라스베이거스 중심지를 걸었다. 갑자기 재발해 버린 질환으로 갖은 일을 다 겪었다지만, 그 덕에 우회하여 함께 걷는 법을 배워 갔다.
최대한 안전하게 다닐 것을 다짐하고 강행한 여행이었다. 이제 나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안전은 더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_51~52쪽
나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뜨거운 태양 아래 엉거주춤 서 있었다. 미련해서 얻었던 질환이지만, 앤털로프캐니언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미련해지고 싶었다. ‘괜찮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 오늘 받기로 한 벌을 내일로 미루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죄인처럼, 찜찜한 마음을 지닌 채 고집을 부렸다. _82~83쪽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날 업고 빙글빙글 돌린다든지, 당신은 전혀 무겁지 않다며, 본인은 하나도 창피하지 않다며 격양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남편을 보며 웃음이 터져 버렸다. 업혀 있느라 삐쭉 나와 있는 내 엉덩이에 뿔이 날지언정, 그 시간은 진정 달콤했다. _154쪽
로맨스, 시트콤, 드라마
이것은 정녕 신혼여행이었다!
신혼여행은 신혼여행이었다. 로맨틱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젠 낭만과 현실을 적당히 넘나들 줄 아는 어엿한 부부였다. 나 몰라라 마음껏 즐기고파도 한 손에는 친정엄마가 쥐여 준 돈에, 다른 손엔 친오빠가 쥐여 준 직불카드가 있었다. 게다가 눈물 콧물 짰던 결혼식을 돌이켜 보자니 고마운 사람은 왜 이리도 많은지! 찡해지는 코끝을 부여잡으며 선물도 부여잡으니 캐리어도 빵빵해졌다. 여행도 즐기랴 감사한 지인도 챙기랴 야무지게 시간을 쓰다 보니 정작 결혼을 실감한 순간은 가령 이런 때였다. 초호화 트럼프 호텔에서 화장실 세면대가 무려 두 개라는 사실에 감탄하며 나란히 각자의 동나 버린 빤스를 빨 때랄까. “아니, 오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내가 오빠 옆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내 빤쓰를 빨고 있잖아! 우리 진짜로 결혼한 거 맞나 봐!”
누구도 각자의 신혼여행이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무수히 오갔던 여러 빛깔의 감정, 생각, 이야기만은 오롯이 기억하는 여행. 누구나 공감하고 그래서 더 웃긴 그 이야기들을 담았다. 여행 후 한국에 돌아와 친정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까지 담았으니 말 다 했다. 두고두고 꺼내는 신혼여행의 기억처럼, 이 책이 두고두고 읽혔으면 좋겠다.
◆ 책 속에서 ◆
신혼여행까지 와서 너무 초라해진 우리의 피부와, 피로에 퉁퉁 부어 버린 손발을 보며 잠시 상상했다. 휴양지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누군가가 서빙해 주는 칵테일(칵테일을 안 좋아하지만 왠지 이 장면에서는 칵테일이 나와 줘야 할 것 같다.)을 한 잔 마시며 얼굴이 번지르르한 채 여유를 즐기고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하는 순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내 앞에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웃으며 로션을 아끼고 아껴 내 건조한 손등에 정성스레 발라 주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작은 것도 왠지 더 소중해지는 이 여행이, 적어도 우리에게는 쉬는 시간보다 훨씬 더 값지게 다가왔다. 이 여행을 하며 힘든 일은 계속해서 생겼지만 그 역경을 함께 이겨 내며 우리는 부부로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_50~51쪽, 「커내브에서의 다소 엉뚱한 로맨스」에서
“오빠랑 연애할 때, 같이 속초 여행을 간 적이 있거든. 속초에 느지막이 도착해서는 밤바다의 모래사장에 앉아 놀았어. 비수기라 꽤 조용했고,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폭죽을 터트리는데 그게 또 괜히 낭만적이더라. 그렇게 앉아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캔맥주를 마시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이 올라오는 거야. 나는 취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벌떡 일어나 바닷가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 마치 바다에 홀린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웃기지? 그래도 다행히 이성은 금방 돌아오더라. 그 짧은 몇 초 동안 ‘아이고, 오빠가 날 엄청 창피해할 거야… 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리에서 뒤엉켰어. 그리곤 민망한 얼굴을 하고 뒤를 돌았는데, 웬걸? 오빠도 나를 따라 나와 내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야. 뻣뻣하고 어색하지만 확실히 행복한 모습으로. 영화에 나오는, 달빛 아래서 춤추는 그런 낭만적인 장면은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오빠와 춤을 추는 그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쿵 하면 짝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나의 어떤 모습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일 것 같아서.”
_58~59쪽,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에서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나의 목구멍은 턱, 하고 막혀 버렸다. 벌어진 나의 입은 흙빛의 텁텁한 애리조나 공기를 머금을 때까지도 좀처럼 닫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치 우주에 있는 어떤 별 하나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우린 그저 태평양만 건너왔을 뿐인데,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
미서부 자연의 삭막한 아름다움은 푸릇푸릇하게 숨 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는 확실히 달랐다. 척박한 땅에서 느껴지는 그 숨결은, 매번 나의 장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내 마음을 울렸다. 그 숨결이 지나간 자리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경외심이 남았다.
_95쪽,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에서
행복했다. 정말 온 마음 다해 벅차오를 만큼 이 순간이 행복했다. 하지만 사실 그 뒤엔 불안함도 함께 따라왔다. … 이 상황이 왠지 내 인생과 닮은 것 같아 조금 슬펐다. 난 행복한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순간이 끝난 뒤 언젠가 찾아올 불행을 미리 걱정하곤 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역경을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무사히 이겨 낸 뒤에, 꼭 행복한 결론을 내리고 싶었다. 내 인생, 온전히 행복함을 느껴도 괜찮다는 결론 말이다. 남편은 불안해하는 나를 토닥여 주었다. 걱정에 잠들지 못할 것만 같았던 모뉴먼트 밸리의 밤, 나는 그 위로에 보답하듯 곤히 잠들었다.
_102~104쪽,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에서
북트레일러 영상: https://youtu.be/0dhTEhq6bOE
저자 소개
온정
1990년에 태어났다. 평생을 역마살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살아왔건만, 궁둥이 붙이고 글 쓰는 일이 체질임을 서른 언저리에 깨달았다. 여행, 남편, 글쓰기까지 세 박자를 모두 갖추고 나니 삶이 한결 충만해졌다.
남들 다 가는 길을 쫓느라 전력을 다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작가라는 꿈을 그리며 산다. 매 순간이 불안하지만 꿈이 있기에 행복하다. ‘온정’이라는 필명에는 따듯한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녹록지 않은 인생에도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 신조를 글 짓는 행위로써 지키고 있다.
이메일: yoonjungna@naver.com
차례
프롤로그
이야기 하나. 미서부 대자연 로드트립
#01 결혼식이 끝나고 미국 땅을 밟기까지
#02 최대한 촌스럽게 여행하라
#03 여행길에서 ‘선택’이란
#04 자이언캐니언 중심에 새긴 발걸음
#05 커내브에서의 다소 엉뚱한 로맨스
#06 결혼, 당신이었던 이유
#07 삼천포로 빠지는 것도 여행의 묘미
#08 아름답고도 아찔한 그곳, 말발굽 협곡
#09 여기서 재발하지 말아 줘, 제발!
#10 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1 이곳이 정녕 지구가 맞는 거야?
#12 드디어, 당신과 함께한 그랜드캐니언
#13 지나친 배려는 배려가 아니었음을
이야기 둘.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
#14 추억이 깃든 별나라 라스베이거스
#15 쇼핑 후 얻은 세 가지 깨달음
#16 내 인생, 당신과 함께라면
이야기 셋. 낭만이 깃든 곳, 샌프란시스코
#17 촉감으로 기억하는 샌프란시스코
#18 샌프란시스코 현지인처럼
#19 익숙한 듯,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미국
#20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
#21 지구는 돌고, 해가 지면 마땅히 달이 뜨는 법
#22 마지막 풍경은 이토록 느리게 흘러가는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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