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 삼부자의 ‘중국해부’ - 2004년 8월 2일 <경향신문>
"기술을 대물림하듯이 학문도 대물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리학자 서무송씨(77)가 함께 지리학의 길을 걷는 두 아들과 '지리학 삼부자의
중국지리 답사기'를 냈다. 이 책은 서씨와 둘째아들 인명씨(47.대광중.고 지리 교사).셋째아들 원명씨(44.수원 천천고 지리 교사) 삼부자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부터 14년 동안 네차례에 걸쳐 배낭을 메고 중국 대륙을 샅샅이 누빈 7만5천㎞ 대장정의 기록이다. 중국 수도권에서
조선족이 모여사는 둥베이지방, 네이멍구.위구르.황하유역.티베트 고원.히말라야산맥 빙하지역 등을 답사했다. 여행일수로는 7개월이
된다.
"중국은 우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나라이지요."
서씨는 삼부자가 함께 답사할 나라로
중국을 택하게 된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서씨는 자신이 옛 북간도의 명월구(明月溝, 지금의 安圖)에서 태어난 것이 또다른 이유라는 걸
숨기지 않았다. 대한제국 때 무과에 급제해 독립운동을 했던 서씨의 할아버지가 백두산 입구인 명월구에 정착, 그곳이 서씨의 고향이
됐다.
서씨가 지리학을 하게 된 것은 지관이었던 증조할아버지의 영향. 증조할아버지는 '농짝' 3개 분량
의 각종 지리서와
자침, 천구의 등을 남겨놓았다. 자신이 증조부의 영향을 받아 지리학을 '업'으로 삼은 것처럼 서씨는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지리학을 대물림했다.
어려서부터 두 아들을 나라 구석구석을 데리고다니며 자연스럽게 지리학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 것. 서씨의 두 며느리도 지리학을 전공했는데 이 또한
서씨가 두 아들에게 '지리학을 하는 짝을 찾으라'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서씨가 중국 답사기를 쓰며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두만강의 작은 삼각주인 녹둔도와 백두산 화산활동 탐사 부분. 녹둔도는 모래가
날리거나 쌓인 삼각주가 육지에 붙어 만들어진 땅. 1860년 북경조약으로 러시아땅이 됐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대동여지도에도 지명이 나오는
명실상부한 우리 땅. 그는 '박씨마을' '쇠다리' '새다리' 등 그곳의 지명에 아직도 우리말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3년 계획을 잡고 제주도 화산지형을 조사 중이다. 여름엔 제주도의 시계가 나빠 문헌조사를 하고 겨울에 셋집을 마련, 현장답사를 할
계획이다. 방학 때 아들과 며느리, 손주가 모이면 그것대로 '지리학 가족의 제주탐사'가 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평양종합대
지리학부를 나온 서씨는 1950년 10월 남으로 내려왔다. 건국대.상지대.공주대.아주공
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동굴학회 부회장,
한국지리교육학회와 대한지리학회 이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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