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평선상에 놓인
수직일 뿐이다
: 대학 대신 여행을 택한 20대의 현실적인
- 여행 에세이
펴낸곳 (주)푸른길
지은이 이원재
정 가 16,000원
ISBN 978-89-6291-853-3 03980
사 양 133*210, 304쪽
초판 1쇄 발행일 2020년 2월 14일
분 야 에세이〉여행에세이
대학을 가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여행을 떠나야 했을 운명인지도 모른다
수능이 끝나고 대한민국의 모든 고3이 대학 원서 접수를 준비할 때 배낭을 메고 인천공항에 선 열아홉 살 남학생이 있었다. 대학 대신 선택한 여행, 그 무대는 이날을 기점으로 세계로 이어졌다. 혹자는 현실 도피가 아니냐며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저자에게 여행은 왜 봐야 하는지 몰랐던 수능보다 더 치열한 고민의 답이었다. 대학 진학과 스펙 그리고 취업으로 이어지는 매뉴얼 같은 삶에 주어진 대로 편승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어느덧 스물 초반, 저자는 이제 외국에서는 외지인이고 한국 사회에선 이방인이 되었다. 정답처럼 여겨지는 삶에 반기를 든 대가는 고졸 백수라는 꼬리표와 소외감이었다. 그럼에도 하늘이 방공호처럼 감싸 안은 평원에서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저자는 고백한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 우리는 모두 수평선 위의 수직으로 선 존재일 뿐이라고, 너 나 할 것 없이 결국엔 모두 다 같은 여행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10대와 20대에 오른 세 번의 여행길,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삶을 위하여
이 책은 열아홉 살의 인도 여행을 시작으로 군 입대 전까지 이어진 2년 반가량의 세계 여행기를 담고 있다. 엉망이 되어 버린 여행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몽골, 러시아, 폴란드, 콜롬비아, 페루, 모로코 등 28개국을 돌아다닌 저자의 여행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계를 떠도는 배낭여행자들이 대개 그렇듯 저자는 가난한 여행자였고, 가난한 여행자에게 여행은 현실이었다. 바가지를 씌우려는 현지인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고, 말도 안 통하는 타지에서 히치하이킹이 일상이었으며, 찌그러진 만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버스에서의 장시간 이동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아무 계획 없이 멍을 때리며 숙소에 앉아 있거나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현지 교통수단을 직접 찾아다니며 헤매기도 했다. 오롯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여행의 순간을 오감에 아로새겼다.
설렘과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 같은
여행의 거품을 제거해서 더욱 현실적인 여행 이야기
여행은 낭만과 거리가 멀 때가 많다. 우리는 여행이 마냥 즐겁기만을 바라지만 실제 여행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예기치 못한 상황과 당혹스러움이다. 그래서 여행은,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더더욱 막막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를 찾아온 이 뜻밖의 손님들이 여행을 다채롭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여행의 즐거움뿐 아니라 외로움의 무게까지 감싸 안는다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여행의 환상을 걷어내고 여행하며 보고 느낀 단상을 담담하고 꾸밈없는 문체로 살뜰히 기록했다.
‘대학 안 가고 300일 넘게 여행한 사람’. 이 짧은 한 문장이 저자를 지칭한다. 여행이 무엇이기에 저자는 섬처럼 떠돌아야 했을까. 저자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우리의 일상은 그저 괴롭고 힘들어서 떠나는 곳만이 아니라 지치고 그리워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여행하며 살 수 있길, 삶 또한 여행과 같길 바라 본다.
◆ 책 속에서 ◆
아침의 피리소리와 뿌연 안개, 가트에 모인 사람들의 오고 가는 이야기, 김치볶음밥과 윤태원, 비쩍 말라 버린 개와 길바닥에 누워 있는 암소, 한 잔의 짜이와 멍 때리기, 그리고 멍, 하릴없이 그저 멍.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내 옆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행복하다. 입시공부에 매달려 교재에만 집중했던 지난날을 뒤로한 내가 바깥세상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름다운 나날이 계속되겠지만, 이마저도 익숙해져 덧없는 자유를 다시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만큼은 괜찮다고 내게 말해 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_40쪽 ‘#6 인도 바라나시... 가트에 앉아 하릴없이 멍을 때렸다’ 중
하늘은 거대한 방공호가 되어 평원에 서 있는 이를 감싸 안는다. 왼쪽 끝 지평과 그의 대척을 연결해 반구를 이루는데, 반구의 중앙엔 은하수가 흐르고 그 주변을 별자리와 별자리가 아니어도 좋은 이름 없는 별들이 무한한 검정을 수놓는다. 간간이 떨어지는 별똥별 또한 지극히 일상적이며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니 몽골의 별똥별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간 몽골에 있는 모든 이의 소원을 들어줘야 했음이 분명하다. 나를 비롯한 모든 여행자가 침낭을 덮고 하늘을 향해 누워 있는데, 고비로 떠나기 전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관한 이야기만 오갔던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대자연을 목전에 둔 사소한 인간의 감상이라든가, 별똥별을 얼마나 더 많이 보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밖에 오가지 않았다. 고국에 직장을 두고 온 이나, 세계 여행을 갓 떠나온 이 모두 수평선상에 둔 수직일 뿐이다.
_120쪽 ‘#23 몽골 고비사막... 우리는 모두 수평선 위에 둔 수직일 뿐이다’ 중
초입부터 들어선 설산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와라즈에서 본 동네 뒷산이 아닌 산맥의 일원이 되어 다가온 안데스는 더 이상 얕보이지 않는다. 트레킹을 하는 레인에서 2위와 3위를 함께 앞다투던 프랑스인 가족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이내 모든 이들이 멀어져 내 앞뒤엔 오롯한 자연만이 남는다. 뒤에서 몇 번째라든가, 앞 사람을 따라잡겠다는 일념은 조용히 접어 두자. 스스로가 만든 경쟁과 싸움에 마음을 쓰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자연경관이다. 자연은 일등을 하는 자에게 칭찬을, 꼴등을 하는 자에게 뭇매를 던지지 않는다. 좁쌀보다 작을 우리는 좁쌀만큼 소중한 존재일 테니. 고산병은 하늘 높이 오르려는 인간을 향한 벌과도 같다. 어떻게 보면 벌보단 아무나 오르지 못하게끔 일종의 핸디캡을 주는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경계, 그 사이에 휘황찬란한 풍경을 새겨 넣은 건 도전하는 이로 하여금 심장을 멎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고도를 거듭할수록 풍경은 아름다움을 더해 가고, 힘 좋고 체력 좋은 서양인들도 껄떡이는 자잘한 숨을 내쉬며 서로를 향해 안위를 묻는다.
_256쪽 ‘#52 페루 리마... Despacio’ 중
터미널 D, 무슨 일이 있어도 터미널 D로 가야 한다. 여러 대의 트럭이 멈춰 섰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튕겨져 나갈 뿐이다. 그렇다면 택시를 잡아타기로 하자. 누구보다도 절박하고 초조하게, 설령 차에 사람이 타 있더라도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배짱이 어디서 나왔나 싶다가도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절실함을 어느 것도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50만 원에 달하는 티켓값이 무서워서일 테지. 택시기사는 황당해 무어라 화를 내면서도 말도 통하지 않는 이의 한결같음에 차를 돌렸다. 나는 그저 ‘스바시바’만 외칠 뿐이다. 그가 나를 향해 말한 러시아어는 암호와 같다. 그전에 한국어, 영어와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욕을 들어도 이보다 단단해지진 않으리라.
_297쪽 ‘#62 다시 유럽, 돌아가기 전 열흘간의 기록’ 중
저자 소개
이원재
오래전부터 여행을 다녔다. 폴더폰을 ‘탁’ 하고 닫으면 통화가 ‘툭’ 하고 끊기던 무렵부터 지금까지. 고등학교 땐 여행하는 고등학생으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동네에서만큼은 소소하게 이름을 날린 적도 있었다. 덕분에 얘 연예인병 걸린 거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지만. 그때가 시작이었다. 여타 고등학생과는 다른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게. 학업에 뜻을 두지 않고 여행과,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삶의 질과 행복을 찾으려고 한 게. 수능은 봤지만 대학 원서는 넣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부터 수능 전까지는 모두 개근, 하지만 고3 신분의 마지막 30일간 인도 여행을 떠남으로써 10대를 마무리했다. 살아가기에 한국은, 대학은 지극히 좁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해서 나는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기 위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차례
프롤로그
이야기 하나. 열아홉 살의 인도
#1 이질감을 느꼈던 순간들
#2 대한민국 인천... 사람은 의외로 큰일 앞에서 초연해진다
#3 태국 방콕... 콜카타로 가는 비행기
#4 인도 콜카타... 여행지로 인도를 선택한 이유
#5 인도 콜카타... 151128
#6 인도 바라나시... 가트에 앉아 하릴없이 멍을 때렸다
#7 네팔 포카라... 포카라 고행
#8 네팔 히말라야... 산은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답다
#9 인도 푸쉬카르... 아날로그적 단상
#10 인도 우다이푸르... 이상주의와 괴리감
#11 인도 아마다바드... 관광도시 속에서 나는 로컬을 갈망하였다
#12 인도 고아... 고아의 도시
#13 인도 함피...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14 인도, 마무리
이야기 둘. 스무 살은 무거운 나이다
#15 스무 살이 되었다
#16 동탄 홀리데이
#17 중국 칭다오... 여행의 시작은 언제나 한결같다
#18 중국 뤄양... 세상 모든 향과 소리가 어우러져도 나는 무덤덤해야 한다
#19 중국 시안... 획일화 속에서 새로움을 찾다
#20 중국 베이징... 모두가 다 같은 생각 속에 살아가는 건 아니었다
#21 중국 얼롄하오터... 세 얼간이의 국경 넘기
#22 몽골 테를지... 별
#23 몽골 고비사막... 우리는 모두 수평선 위에 둔 수직일 뿐이다
#24 러시아 국경 기차역에서 노숙하기
#25 러시아 이르쿠츠크... 아대륙의 중앙에 서서 유로파를 외칩니다
#26 시베리아 횡단열차, 3박 4일의 기록
#27 러시아 모스크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버스를 타야 했다
#28 우크라이나 키예프... 평범하나 평범하지 않은 도시에서의 일일
#29 우크라이나 리비우... 2010년 그리고 2016년
#30 유럽에서 히치하이킹으로 국경 넘기
#31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
#32 폴란드 자코파네... 강 건너 슬로바키아, 국경이 뭔지
#33 체코 프라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34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는 해가 질 무렵이 더 아름답다
#35 크로아티아 자다르... 당신에게 2016년은 어떤 해였나요
#36 스위스 인터라켄... Gutschrift
이야기 셋. 현실적인 스물하나
#37 161209
#38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39 편의점 인간
#40 군산
#41 다시, 세계 여행
#42 미국 뉴욕... 단편적으로 바라본 뉴욕
#43 쿠바 아바나... 사회주의 그리고 아날로그
#44 쿠바 트리니다드... 모든 일은 언제나 문제없는 일들이었나
#45 사람, 염소, 닭이 같이 타는 낡아 빠진 시골버스는 쿠바에 있었다
#46 멕시코 칸쿤... 천국이 마냥 천국 같지는 않은 법이지
#47 멕시코 팔렝케... 오래된 역사유적의 과거와 현재
#48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숙소에 앉아 하릴없이 멍을 때렸다
#49 과테말라... 오토릭샤와 치킨버스가 함께하는 나라
#50 콜롬비아 보고타... 남미의 낯선 도시가 서울같이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51 막장 국가 베네수엘라 당일치기로 여행하기
#52 페루 리마... Despacio
#53 페루 쿠스코... 무지개산과 마추픽추에 오른 이유와 변명
#54 170606
#55 볼리비아 라파스... 달의 계곡
#56 볼리비아 라파스... 볼리비아 사람, 욱환 씨
#57 볼리비아 우유니... 우유니 없는 우유니
#58 파라과이 아순시온... 파라과이에 간 단 하나의 이유
#59 브라질 리우... 가끔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나를 맞이한다
#60 모로코 카사블랑카... 새로운 문화권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61 사실은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말이야
#62 다시 유럽, 돌아가기 전 열흘간의 기록
#63 마무리 1
#64 마무리 2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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