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도둑
펴낸곳 (주)푸른길
지은이 김회권
정 가 10,000원
ISBN 978-89-6291-415-3 03810
사 양 130*205, 136쪽
초판 1쇄 발행일 2017년 7월 3일
분 야 한국문학>시
TEL 02-523-2907
FAX 02-523-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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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편집 정혜리(pur904@purungil.co.kr)
문학은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소시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보고하는 장
김회권 시인에게 문학은 삶의 현장에서 소외된 소시민들의 보편적인 삶을 드러내고 보고하는 장이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우아한 도둑』에서 역시 그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성찰과 소시민들의 삶에 대한 관심을 단단한 시어로 새기고 있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의 삶과 체험을 시에 담고자 했던 이러한 갈망은 시인의 삶의 지향점이 그의 시 세계에 집약적으로 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퇴근길 키 작은 담장 너머로 / 쫑긋 고개 내민 장미꽃 한 송이 // 오메 반가워라, / 눈 환하게 와 닿는 마음 / 꽃보다 더 붉네 // 두 발 곧추세워 내민 손끝에 / 난데없이 와 닿는 / 고함 소리, // 이보소, 왜 남의 꽃을 꺾고 그래싸요! / 골목 먹먹히 울려대는 / 주인 아낙네의 낭창한 쇠갈음 소리 / 한데 이 맘은 왜 이리 청정할까? // 오늘이 바로, / 아내의 귀빠진 날
- 「우아한 도둑」 전문
김회권 시인이 문학의 열정을 키운 곳은 전라도이다. 그의 시에는 종종 전라도 방언이 등장한다. 시인에게 전라도 방언은 시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언어라는 의미 이상을 내포한다. 표제 시에서도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전라도 방언이다. 흔히 방언은 그 지역의 현장성과 지역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시적 장치로 작동한다. 이 시에서도 시적 화자는 “아내의 귀빠진 날”, 즉 아내의 생일날, 퇴근길에 담장 너머에 피어 있는 장미꽃을 보며 순간 “오메, 반가워라” 한다. 그 마음이 “꽃보다 더 붉”다. 발뒤꿈치를 들고 꽃을 꺾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이내 “이보소, 왜 남의 꽃을 꺾고 그래싸요!” 하는 주인의 “쇠갈음 소리”가 울린다. 아마 이 상황에서 주인이 표준어로 엄중하게 꾸짖으며 외쳤다면 비록 그 대상이 꽃일지언정 그것은 엄연한 절도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꽃을 꺾으려는 사람과 꺾지 못하게 하는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결코 긴장되거나 팽팽하지 않다. 그것은 방언이 주는 토속적 정감 때문이다. 예쁜 꽃을 보는 순간 아내를 위해 손을 내미는 동작은 어떤 도덕적, 법률적 잣대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순수한 상태이다. 그것을 시인은 제목에서 암시해 놓았다. ‘우아한 도둑’. 이 문법 구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형용모순’이다. 시인은 양립될 수 없는 말을 서로 짜 맞추어 표면상으로는 모순된 표현이지만 심층에 인생의 깊은 진실을 담아 시적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이 시에서 주인이 내뱉는 ‘쇠갈음’ 소리는 오히려 생기와 실감을 획득하게 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이러한 시적 효과를 통해 시인은 따듯한 인간미가 실종된 각박한 현실을 환기시킨다. 선물은 주고받는 재화 자체의 물질적 가치보다는 받는 이에 대한 주는 이의 선의와 사랑을 드러내는 상징적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선물은 재화의 크기에 의해 그 가치가 비례하게 되었다. 본래 선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인 타자성, 자발성, 무상성 등이 사라지면서 선물의 본래 의미마저 많이 퇴색되어 있다. 「우아한 도둑」은 아내에게 생일선물을 하고 싶은 필부의 소박한 마음을 지역인들의 삶의 경험과 사유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지역언어를 통해 드러내면서, 현대인들에게 선물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소시민의 삶을 역동적인 삶으로 회복시키는 지점이다.
보편적 삶의 구조, 갇히지 않은 주체
김회권의 시는 일상의 보편적인 정서들의 내면을 되짚어 보는 언어세계를 구축한다. 시인은 이러한 사실성(reality)에 기반을 두어 그가 추구하는 세계를 ‘인간적’ 리얼리즘으로 풀어 나가고자 하는 형식으로 드러낸다. 그의 시 세계는 이성보다는 감성, 관념보다는 감각을 강조한다. 시인은 세계 그 자체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감각 세계에 인간의 보편적 삶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보편적인 현실적 일상에 착안하여 감성적인 시적 요소를 적재적소에 장치하여 때로는 진한 페이소스로, 때로는 해학과 유머로 독자들의 공감을 확보해 낸다. 독자들은 그의 시를 읽는 사이 자연스럽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시인의 사유에 공감하게 된다.
옥탑방에 난데없는 부음이 날아왔다 / 한 시절 너나없이 지냈던 박씨, / 면회도 없는 곳 잘 가시게나 // 노잣돈 꾸러 밖을 나서자 / 반갑지 않은 삼월의 싸락눈이 나린다 / 질퍽한 마음 차고 고이는 게 / 뭐랄까, 끌어안지도 내치지도 못할 / 지독한 외로움이랄까, 슬픔이랄까 // 돌아보면 인생은 비릿한 맹물 같고 / 어느 날 황망히 놓쳐버린 한여름 밤 꿈 같아 / 터벅터벅 노잣돈 꾸러 가는 날 / 내딛는 발은 마냥 헛돌고 / 질긴 맞바람만 가슴 써늘히 차고 든다 // 눈 익은 선술집 턱 낮은 문턱 / 낮술에 거나한 주인장 민규 형은 / 적적한 참에 마침맞게 왔다며 / 덥석 잡은 손에 대폿잔을 내민다 // 울적한 마음 봇물 터지듯 단숨에 들자 / 연거푸 다시 따르는 술 // 내 속엣것 하고픈 말은 천길 소용돌이치고 / 몇 순배 돌고 돈 술잔에 몸은 / 스르르, 스르르 / 춘삼월 봄눈 녹듯 녹아내리고
- 「노잣돈 꾸러 가는 날」 전문
김회권 시의 시적 존재들은 보편적인 삶의 구조 속에서 구체적인 정황과 누추한 기억으로 드러난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구체적 국면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의 근원을 묻는 거시적 담론으로 포착된다. 옥탑방, 노잣돈, 박씨, 삼월의 싸락눈, 선술집, 대폿잔 등은 구체적이면서도 누추한 정황을 잘 드러내 주는 시어이다. 어느 날 옥탑방에서, 한 시절 같이 지냈던 박씨의 부음을 받고 노잣돈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는데 싸락눈이 내린다. 때아닌 싸락눈만큼 시적 화자의 “질퍽한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상관물이 있을까. 시적 화자는 이를 “끌어안지도 내치지도 못할” 외로움과 슬픔으로 표현한다. 보편적 삶의 구조 속에서 비춰지는 노잣돈을 꾸러 가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누추하기만 하다. 그래서 그의 발걸음은 “마냥 헛돌고” “질긴 맞바람”은 “가슴 써늘히 차고 든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침 선술집에서 아는 형을 만나 “울적한 마음 봇물 터지듯 단숨에 들자” “내 속엣것 하고픈 말은 천길 소용돌이 치고” 그대로 “봄눈 녹듯 녹아내”린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 박씨, 민규 형은 모두 일상의 맥락에서 구체화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들의 삶은 일상적 삶의 구조에서 공유하는 어떤 보편성에 입각해 있다. 그러나 “면회도 없는 곳”으로 가버린 박씨와의 이별이 주는 극한상황은 시적 화자에게 결코 보편성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인이 구사하는 시적 전략은 삶의 경계, 감정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보편적 삶의 구조를 해체하여 삶의 누추함을, 슬픔을, 외로움을 해방시키고 삶의 주체인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김회권의 시적 미학의 독특함은 삶이라는 보편성 속에서도 그 속에 갇히지 않은 열린 주체로서의 특수성이 교묘히 얽혀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특수성은 그의 시를 생기발랄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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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회권 시인은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보편적인 삶의 구조에서 현실을 직시하면서 정감 있는 방언으로, 포복절도할 위트로, 천연덕스러운 능청으로 시적 전략을 구사한다. 각박한 세상을 건너는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인간과 자연의 세계를 정서적 표출로 삼는 일반적인 서정의 방식과는 달리, 대상에 대한 철학적, 심미적 통찰을 통한 가치 추구적인 세계로 서정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_유인실(시인, 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저자 김회권
시인 김회권은 2002년 《문학춘추》에 시로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숲길을 걷는 자는 알지』 『동곡파출소』, 산문집 『뜨락에서 꽃잎을 줍다』 『꽃처럼 웃다가 주름진 얼굴로 가라』 등이 있다. 2006, 2009, 2017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오산신인문학상, 광명신인문학상, 복숭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시인의 말
1부_ 고니를 쏘다
진눈깨비 나리는 날 / 고니를 쏘다 / 입속의 붉은 칼 / 귀한 작대기 / 거금도 명천마을 / 귀향길 / 보증금 빼내 얻은 첫날 / 등나무 / 노잣돈 꾸러 가는 날 / 외상값 갚는 날 / 개가 짖는 이유 / 바람이 분다 / 우중雨中 속 타는 목에 / 바닥난 쌀독 / 터무니없는 요구 / 엎어진 개밥그릇 / 뜨거운 건 왜 눈물이 날까 / 인정스런 봄날 / 절밥 얻어먹기 / 나물 파는 할매 / 부처를 놓치다 / 나이는 무엇으로 먹는가
2부_ 오늘 같은 날
홍시 / 매 맞는 강 / 가오리연 / 오늘 같은 날 / 민달팽이의 꿈 / 노부부 / 콩알 줍는 아낙 / 위대한 가장家長 / 미친 그리움 / 너무 늦은 고백 / 어느 사랑 이야기 / 소낙비 오기 전 / 우아한 도둑 / 담쟁이 / 보름달 / 이 몸 무엇이 되어 / 연꽃 / 지게 / 가을 달밤 / 돌 우는 강 / 안개꽃 / 여우 같은 여자 / 구겨진 심경 / 사병과 나비 / 수수밭에서 생긴 일 / 불경한 손
3부_ 오래된 술
오래된 술 / 서울로 가는 황소 / 어머니의 분첩통 / 사라진 땅 / 새 / 산사에서 1 / 산사에서 2 / 그리운 아줌마 / 낡은 집 / 진도 바닷길 1 / 진도 바닷길 2 / 진도 바닷길 3 / 다시 길 위에서 / 이사 가는 날 / 노인과 아이 / 통회 / 오늘의 기도
해설_ ‘인간적’ 리얼리즘으로 빚는 주체의 해방 _유인실(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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