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지형 이야기
양희경, 장영진, 심승희 지음/256쪽/15,000원/2007년 8월 27일 출간/
ISBN 978-89-87691-85-5 03980
영화 속 지형은 그저 배경이거나 주인공을 빛나게 해 주는 소품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산의 작은 돌멩이, 습지의 풀 한 포기, 바닷가 모래 알갱이가 저마다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지형의 이해가 영화를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한층 더 현실감 있게 다가가는 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책을 펴내며 중
영화 속 지형이 들려주는 이야기
국어사전에 의하면 지형이란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를 말한다. 백과사전의 설명은 좀 더 길고 복잡하지만 굳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지구 표면의 특징적인 형태를 말하며 지표의 고저기복, 즉 산·골짜기·평야·하천·해안·해저 등의 각종 지표 형태’를 말한다.
지리에서 지역이란 사람들이 삶을 이어 가는 터전이고 지형은 이 삶터의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깊이 있는 성찰을 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에 대한 단순한 정보의 습득만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이에 기대어 이루어지는 인간 생활을 체계적으로 이해해야만 가능하다. 땅 위에서 물과 공기의 흐름을 규제하고 생물과 인간 생활의 터전을 제공하는 지표의 구성 요소로서의 지형을 체계적으로 이해해야만 어느 지역이나 세계를 본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형은 산․평야․해안 등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고, 인간의 삶을 초월할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기 때문에 말이나 글로 온전히 설명하거나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때로 수천 마디의 말이나 글 대신 한 장의 지형 사진이, 한 장의 지형 사진 대신 움직이는 영상이 더 큰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그중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영상물은 바로 영화이다. 영화에서 영상을 이루는 요소가 인물과 배경인 것처럼 지리의 중심에는 항상 지역과 이를 토대로 역사를 이어 가는 주민들의 삶이 있어 왔다. 지형을 영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생활을 통해 보면 이해하기가 훨씬 쉽다. 반대로 영화 속 사람들의 생활도 지형을 통해서 보면 이해하기 쉬운 면이 많이 있다.
세 명의 여성 지리학자가 쓴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지형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책이다. 혹은 지형을 통해 영화와 좀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책이다. 모두 26편의 영화를 통해 10여 가지의 지형을 다루었으며 영화 장면 외에 참고 사진과 그림 등을 추가하여 좀 더 쉽게 지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영화라는 프레임을 통해 지형을 볼 수도 있고 지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영화를 볼 수도 있다. 지은이들이 지리학자인 만큼 영화라는 프레임을 통해 지형이라는 주제에 다가서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떤가. 지형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영화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그것대로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본문 속으로
다음 세 영화의 무대가 된 곳은 모두 카르스트 지형이다. 세 곳 모두 석회암이라는 같은 기원에서 형성되었지만 온대 지역과 열대 지역이라는 차이, 해발 고도의 차이, 빙하의 영향 등으로 인해 전혀 다른 경관을 보여 준다.
영상미나 스토리의 전개, 음향에 기울이던 관심을 영화 속 지형으로 돌려 보면 그동안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된다.
<폭풍의 언덕>에서 두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예언한 이 독특한 경관의 카르스트 지형은 왜 이토록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또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카르스트 지형이란 석회암으로 인해 발달하는 독특한 지형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폭풍의 언덕>의 배경인 영국 잉글톤의 석회암은 가장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이 발달하는 석탄기에 형성된 석회암이다. 회색빛을 띠는 석탄기 석회암은 탄산칼슘 성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단단하고 절리가 많아 물에 의한 용식이 활발해 카르스트 지형이 매우 잘 발달한다. 따라서 잉글톤의 카르스트 지형은 회색빛의 암석 표면이 울퉁불퉁하게 용식되어, 에칭처럼 메마르고 거친 듯 황량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위 사진 중 가운데는 중국의 구이린을 무대로 찍은 <소림사 2>의 한 장면이고, 오른쪽은 베트남의 할롱베이를 무대로 한 <인도차이나>의 한 장면이다.
충적 평야 지역의 봉우리가 특징적인 구이린과 달리 할롱베이는 바다 위의 수많은 섬이 무리를 짓고 있어 두 지역은 경관상으로 매우 상이하다. 그래서 봉우리가 탑과 같이 뾰족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구이린과 할롱베이의 지형은 함께 다루어지기보다 별개의 지역으로 인식된다. 그뿐 아니라 두 지역은 중국과 베트남이라는 상이한 국가에 속하고 내륙과 해안이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그 기원이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구이린과 할롱베이는 동일한 기원의 기반암을 근간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열대 카르스트 지형으로 해발 고도에 차이가 있을 뿐 지형적으로는 유사한 형성 과정을 겪어 왔다. 두 지역이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갖게 된 것은 두 지역 모두 지반을 이루는 암석이 석회암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이 책을 함께 쓴 양희경, 장영진, 심승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양희경은 주로 지형학을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 자운고등학교 지리 교사이다. 『지리 교사들, 남미와 만나다』를 여럿이 썼다. 장영진은 주로 환경지리와 경제지리를 공부했으며 현재 서울 중경고등학교 지리 교사이다. 『세계화 시대 대기업의 진화』를 여럿이 번역했다. 심승희는 주로 문화지리를 공부했으며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조교수이다.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을 썼고, 『장소와 장소상실』, 『공간과 장소』를 여럿이 번역했다.
세 사람은 각자 나이와 세부 전공이 다르지만, 지리 공부에 열정을 쏟던 대학원 시절부터 친해졌다. 특히 모두가 박사 학위를 받은 시점인 2002년부터 함께 공부하고 답사 다니면서 유익하고 재미있는 지리책을 써 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세 사람은 계속 서로를 격려하고 보완하면서 좋은 지리책을 쓰기 위한 도전을 즐겁게 진행할 계획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지리의 이해 > 교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앵글 속 지리학(상/하) (0) | 2011.12.19 |
---|---|
메르카토르의 세계- 지도 위에 근대를 그린 천재 지리학자 (0) | 2008.02.28 |
지리교사들, 미국 서부를 가다 (0) | 2007.05.30 |
지도와 거짓말 (0) | 2007.05.26 |
이야기가 있는 세계지도 (0) | 2007.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