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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이해/교양

메르카토르의 세계- 지도 위에 근대를 그린 천재 지리학자

by 푸른길북 2008. 2. 28.

메르카토르의 세계 

지도 위에 근대를 그린 천재 지리학자

 

 

 

 

 

앤드루 테일러 지음/ 손일 옮김

메르카토르의 놀라운 업적은 그가 16세기에 살면서도 21세기인 지금에도 통용되는 방식으로 보통 사람들을 위해 세계에 대한 정의를 내려 준 것이었다. 그의 투영법은 여전히 고대의 지혜에 집중하고 있던 세계 속에서 이룬 근대적인 사고의 승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남았다. 이 책은 ‘지도란 그 당시 세계를 어떻게 상상하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상상해 왔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이해한 16세기의 천재 지리학자 메르카토르의 지적 여정을 그린 것이다. 

 

 

 

본문 속으로 

 

1장 :

이 지도는 단순히 참고하는 지도가 아니라 해석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믿음의 선언처럼 말이다.

지도학의 역사는 남겨진 것에 대한 가슴 졸이는 연구이다.


6장 :

루뱅 대학의 후원이 있긴 했지만, 자연과 천지 창조의 질서와 조화에 대한 기쁨이 생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친구이자 최초의 전기 작가인 발터 김이 말한 대로, 철학으로는 “다가올 세월 동안 그가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다.”...나중에 그의 사업 경력에서 보듯이 메르카토르는 물질적인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약삭빠를 정도로 잘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철학 연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영향력 있는 교유망을 만들려는 그의 열정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러한 만남은, 할 일은 찾았지만 그것을 이룰 만한 재산이 없는 재능과 야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무한한 가치가 있었다.


10장 :

종교 재판의 잔인한 대우 때문에 많은 희생자들은 비통함과 종교적 극단주의로 더욱더 빠져들었고 그들의 믿음은 더 확고해졌다. 하지만 메르카토르가 뤼펠몬데 성채에서 있었던 몇 달 동안은 그에게 또 다른 의미로 남았다. 그는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평화스럽고 원만하게 살고 싶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천성이 조심스러운 그는 이론이 분분할 수 있는 어떤 주제든지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 훨씬 더 신중해졌다. 그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교회의 개혁 신봉가로 남았지만, 다시는 절대로 종교 재판소의 관심을 끄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다.

일단 자유롭게 되자 그는 연구를 도피처로 삼아 책과 도구를 가지고서 자신을 격리시켰다. 이것은 현명한 행동이었다. 종교 당국자들은 열심히 일하는 학자 겸 흠잡을 데 없는 배경을 가진 상인인 그와 불편한 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정신적 피난처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작업은 감금의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었으며, 친숙하고 위안을 주는 경관으로 돌아가는 여행이었다. 고전의 연구는 변하지 않는 지혜와의 만남을 제공한 반면, 판각 및 다른 수작업에 요구되는 집중력은 그가 무엇을 해 왔는지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15장 :

매년 열리는 프랑크푸르트 박람회는 적어도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 년 동안 수도사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지고 다닌 상품 중에는 비단, 포도주, 보석, 정교한 조각품 등과 다른 화려한 품목 이외에 원고도 있었다. 박람회장의 종이 울리는 순간부터 교역이 시작되었고, 상인들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이동하면서 교역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새로운 인쇄물 교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15세기 말쯤에는 매우 많은 서적 판매상들이 몰려와서 마인 강 근처는 책 골목(Buchgasse)으로 유명해졌다. 메르카토르가 활동하던 즈음에는 프랑크푸르트 박람회가 독립적인 서적 박람회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그의 지도와 지구의를 살 새로운 고객을 찾는 무대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 건너로 확대된 무역망의 일부가 되었다.


17장 :

메르카토르가 착수한 일은 지도상의 직선이 바다에서도 직선이어서 항해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1569년에 제작한 세계 지도의 주석에 라틴 어로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투영법 덕분에 “지구의 표면이 평평하게 펼쳐져 각 장소들이 방향과 거리 모두에 관한 한 서로 상대적으로 정확한 위치에 있으며,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그의 의도는 기존의 세계상을 갱신하는 것만이 아니라, 학자와 항해가들에게 공히 유용한 새로운 목적을 지닌 새로운 유형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 지도는 왜곡이 최소화된 대륙의 진정한 모습을 나타내 주는데, 이는 단순히 새로운 버전의 지도가 아니라 세상에 관한 새로운 시각 바로 그것이었다.


22장 :

그의 작업은 전 세계, 항해가, 탐험가, 상인 그리고 훌륭한 군주를 위해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문은 학자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세계인이 되려면 정치와 무역을 살펴야 한다고, 그는 썼다. 지도는 제국의 증인이며, 지도 없이는 무역뿐만 아니라 훌륭한 통치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리학적인 지도가 없다면, 상인들은 가장 거대하고 부유한 나라에 가서 그곳 주민들과 교역을 하거나 전 세계를 유럽의 파트너로 만들 수 없다. 또한 지도가 없다면, 군주가 확고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영토를 가장 잘 통치하는 방법을 신뢰할 수 없는 기록과 난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그는 아틀라스에서 선언했다.


후기 :

모든 사람은 세계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고 실제로 지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메르카토르의 직사각형 이미지를 마음속에 두고 있다. 그의 세계 지도는 세계에 대한 상상을 간파했다. 철자법을 개혁하자는 논쟁과 마찬가지로 도법에 대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지만, 사람들은 매혹적이고 확신을 주며 친숙한 것에 집착한다. 학교 교실의 벽, 일기와 잡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메르카토르의 지도이다.


근대의 지도 제작은 뤼펠몬데의 메르카토르로부터 시작되었다. 4세기 이상이 지난 오늘날 그의 시각은 지배적인 세계관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될 때 적절히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세계 지도를 떠올려 보라고 요구했을 때 4백 년간의 지리상 발견을 나타내는 그림이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있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지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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