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과 여인숙이 동거하는 거리가 있다. 기차가 지나는 역사와, 사람들이 물건을 이고 지고 모이는 시장과, 다시 그들을 받아들이는 작은 여인숙이 있는 골목이다.
남광주(南光州) 역은 예전에 경전선이 지나던 곳으로, 지금은 기차 한 량만 남아서 과거에 이 장소가 역사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남광주 역이 호황을 누렸을 때 역 근처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몰려들어 시장이 만들어지고, 시장이 만들어지니 여인숙이 생겨났다. 남광주 역 앞의 2차선 도로를 넘으면 여인숙이 모여서 만들어진 골목길이 있다. 이 거리에서는 역과 여인숙과 시장이 만나는 골목과 그 골목에서의 삶을 볼 수 있다.
시장 길은 입구에서부터 바닥에 물기가 가득하다. 생선 가게에서 도로에 버린 얼음과 물이 이 길을 지나다니는 차량의 바퀴에 묻어 그 세력을 펼쳐 갔다. 그래서 도로는 물기로 가득하다. 물기의 흔적은 인도에도 존재한다. 도로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신발 바닥에 물을 적셔서 인도에 큰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할리우드 스타도 아닌데, 온 인도에 풋프린트(foot print)를 남긴다. 신발 바닥의 모양에 따라서 그 모습도 다양하다. 시장의 인도는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느 신발을 신고 다니든지 저마다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족적이 아름답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생선 가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갯벌의 진흙을 몸에 바르고 뭍으로 나와서 입을 벌리고 힘들어 하는 꼬막이 있다. 당연히 기차 타고 벌교에서 온 줄 알았지만, 가게 주인의 대답이 의외다. 일본산이라고 한다. 꼬막의 여행이 안타깝다. 꼬막은 일본에서 출발하여 벌교로 들어와 다시 남광주 시장으로 온다고 한다. 꼬막하면 벌교였는데, 이젠 아닌 모양이다. 바지락도 보인다. 1kg에 4,000원이란다. 바지락을 푸는 조리라는 도구가 이채롭다. 꼬막과 함께 어물전 망신을 시킨다던 꼴뚜기도 낯을 세운다.
시장 통로를 사람들을 따라 걸어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꽃게를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 주인은 50년 동안 먹고 살기 위해 야채 장사, 과일 장사 등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한다. 그 가게의 꽃게 파는 통에 새우깡이 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왜 그 안에 새우깡을 넣어 놓았냐고 물으니, 꽃게의 거품을 없애기 위함이란다. 새우깡이 게의 거품을 먹어치우는 형국이다. 이런 모습은 꽃게나 미꾸라지 같은 거품을 내는 생선을 파는 가게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장을 지나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골목은 자가 복제하여 그 길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 길에서 쉬어 갈 수 있는 숙소를 내어 준다. 병무청안길은 그 전형을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병무청안길은 병무청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가는 초입에 있다. 이런 도로는 소방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다. 그 길에 초보 운전자가 차를 들이밀었는데, 차가 길에 낄 정도로 좁다. 표지판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좁다란 길이 알아서 사람을 안내한다.
처음 나오는 건물이 ‘무진’ 여인숙이다. ‘무진기행’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무진 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모습을 담은 그 소설의 제목을 단 여인숙이다. 주인에게 왜 무진이라고 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냥 내 맘대로 생각해 보면, 무진기행의 ‘무진’이나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이나 돈을 무진장 벌게 해 달라는 의미로 작명소에서 지어 온 이름 중 어느 하나일 것이다.
여인숙은 그 이름이 낭만적이다. 말 그대로 여인숙(旅人宿)은 나그네가 잠을 청하는 곳이다. 어릴 적에는 이를 여인숙(女人宿), 즉 여자들이 자는 곳인 줄로 알았다. 나그네가 잠을 청한다는 멋지고 낭만적인 여인숙의 의미가 요즘에는 어찌된 일인지 허름한 숙소를 의미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여행객이 잠을 자는 곳으로는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꼴이다. 그래도 여인숙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이곳은 추억의 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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