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좀 버리지 마세요! 라고 쓰여진 주인의 붉은 스프레이 글자도 반갑다
고지서와 연애편지는 벽돌 구멍에 넣어주는 센스, 그 옛적 우리들의 소통 창구 골목길
천변길의 끝없는 자기 복제를 보다
담주리의 길을 벗어나 천변로를 건너면 곧바로 천변길이 나온다. 천변길은 천변 1, 2, 3길로 자기 복제를 하여 골목길이 이어진다. 말 그대로 담주천의 천변에 놓인 길인 천변2길로 들어서면 ‘무량사’라는 절이 나온다. 한옥으로 이루어진 주택가에 자리 잡은 무량사의 돌담이 인상적이다. 새 돌로 헌 돌을 보완하고, 돌과 흙을 시루떡처럼 번갈아 쌓아서 만든 돌담이다. 돌담 위의 수세미 꽃이 참으로 아름답다. 골목의 아스팔트와 담 사이의 틈에 채송화들이 피어 있다. 흙 없는 땅에 뿌리를 박고 바짝 엎드려서 생명을 유지하는 자연의 질긴 생명력을 확인해 본다. 그 거친 곳에서 피워 올린 작고 아름다운 꽃에서 종족 번식 본능의 위대함을 본다.
만든 사람의 개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정겨운 우리 골목 돌담들
골목에는 약 50미터의 일정한 간격으로 전봇대가 세워져 있다. 하얀 종이에 ‘월세 있음’이라고 쓰여 있는 전단이 붙어 있는 전봇대를 지나서, 골목길을 가다 보면 중간 즈음에 천변3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천변리의 본격적인 골목길이 시작한다. 자동차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골목이다. 그 골목의 양쪽에는 벽돌담과 대문과 집들이 교차하면서 골목을 이어가고 있다. 골목의 집들은 담을 처마 밑까지 올려서 처마와 담을 하나로 이어 버렸다. 골목의 집들은 거의 모두 이런 형식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한 것은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담 너머로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을 막고, 빗물이 집 안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과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
붉은 스프레이로 쓰여진 글자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골목에는 후미진 곳이 있게 마련인데, 전봇대 밑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가로등이 없던 시절엔 어느 취객이 사주 경계를 한 후 시원하게 노상방뇨를 하던 곳이다. 또한 그곳은 쓰레기를 버리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 전봇대와 담을 나누고 있는 집주인은 누군가 남몰래 버리고 가는 쓰레기에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참다 못해서 집주인은 빨간 스프레이로 전봇대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이라고 적고, 담벼락에는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라고 적어 두었다. 두 표현을 보면, 집주인은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에게 강온의 전략, 즉 명령과 간곡한 부탁을 함께 쓰고 있다.그 집의 담벼락은 벽돌이 아직 세월의 풍상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새로 쌓아서 단장을 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담벼락의 맨 윗단 벽돌 구멍에 누가 먹었는지 박카스 병들이 꽂혀 있다. 과거에 우체통이 보편적이지 않았을 때는 그 벽돌의 구멍에다가 군대에 간 아들이 부쳐 온 군사 우편 편지도, 부고장도, 연애 편지도, 성적표를 동봉한 학교 편지도, 전기세 등 고지서도 꽂아 두었다. 벽돌 구멍은 우리들이 소통하는 곳이었다.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간직한 천변 정미소
낡고 헐었지만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희망이 담겼던 모습은 그대로다
길이 만나는 곳은 사람들이 모이기 좋다.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는 정미소가 있다. 그 정미소의 이름은 ‘천변 정미소’다. 지금은 도시화가 이루어져서 농사짓는 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정미소의 기능도 그 역할을 다하여 문이 잠겼다. 그래도 그 위용은 여전하다. 함석지붕을 하고 있는 정미소는 내부에 높은 천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단 지붕을 하고 있다. 벽면도 허름하고 문도 녹슬었지만, 농업 사회에서 가장 큰 건물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는 듯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고 있다. 측면은 우리의 맞배지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배고픈 시절에 정미소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집안에 저장 시설이 없을 때는 이 정미소에 벼를 저장해 두기도 했고 일부 가옥에서는 마당 가운데에 임시로 함석을 가지고서 둥근 저장통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저장해 둔 벼로 방아를 찧어서 자식 학비도 만들고 가용 돈으로 쓰기도 했다. 천변 정미소에도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장과 여인숙이 동거하는 거리, 남광주역 (0) | 2011.01.07 |
---|---|
하루를 살아가는 낭만쟁이, 노점상 (0) | 2011.01.06 |
우리들의 가슴 시린 옛 추억들 (0) | 2010.12.28 |
담주리 주택 골목에서 대문의 역사를 읽다 (0) | 2010.12.13 |
골목길에서 마주치다-프롤로그 (0) | 2010.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