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숙, 장, 모텔 중 어느 쪽이 더 급이 높을까?
욕실 완비, VTR 완비 등의 굵고 붉은 글씨들이 소리 없는 전투를 벌이는 곳, 여인숙 거리
좁은 땅에 여인숙이 즐비하다
‘무진’ 여인숙을 지나가면 ‘행운장’ 과 당구장이 나오고 다시 앞으로 가면 ‘해태장’ 이 나온다. 그 곳에 이르면 골목은 다시 자가 복제를 한다. 부챗살 모양으로 퍼진 삼거리가 나온다. ‘무진’ 여인숙의 길까지 합하면 사거리다. 그 사거리에서 먼저 직진을 해 본다. 그 길은 병무청안길보다 더 좁다.그 길에는 ‘우정’ 여인숙, ‘대풍 온천’ 여인숙, ‘제이’ 모텔, ‘보보스’ 모텔 등이 들어서 있다. 우정 여인숙의 간판은 전봇대에 바짝 달라붙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 길은 제이 모텔에서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다시 그 길을 돌아서 나와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참으로 작은 슈퍼가 있고, ‘S’모텔, ‘브랜드 코리아’, ‘리빙’ 모텔,‘ 허브’ 모텔, ‘Starvill’ 콘도 등이 있다. 그 길을 더 가면 다시 큰길로 이어진다. 이 길의 반대쪽에는 ‘보은’ 여인숙, ‘청원’ 여인숙, ‘로얄장’, ‘명동’ 여인숙, ‘서울’ 여인숙, ‘경기’ 여인숙, ‘신광’ 여인숙, ‘수영’ 여인숙, ‘투룸&원’ 이 있다. 이 길의 이름은 금문 3길이다. 총 길이가 400여 미터인 거리에 있는 여인숙 촌이다. 좁은 땅에 여인숙이 즐비하다.
그 좁은 창에 세상의 빛을 어떻게 담을까
이곳의 여인숙 거리는 이름만 들어도 계급이 있다. 여인숙, 장, 모텔 순이다. 아마도 그 위에 호텔이 있을 것이다. 병무청안길과 금문3길은 여인숙이 주를 이룬다. 전통적인 여인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정집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마당이 있고, 그 마당을 중심삼아 사각형으로 작은 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여인숙과 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들은 단층집이다. 밖에서 보면 집안을 보기도 힘들게 높이 쌓은 담이 있고, 창문은 방의 크기에 비례하여 참으로 작다. 저 좁은 창으로 세상의 빛을 어떻게 담을까 싶다. 그리고 그 처마도 참으로 낮다. 어른 키보다 조금 높다. 어느 여인숙은 슬래브 집이다. 계단이 있고, 그 계단으로 올라가면 옥탑방도 있다. 마당에는 수도꼭지가 있고 공동으로 세수할 수 있는 세면대가 있다.
집이 없다고 삶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방 사는 장기 투숙객, 한 달 단위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름
이곳 여인숙 거리에는 입간판을 내다 놓은 집도 있다. 그리고 집 앞에는 눈길을 끄는 광고가 있다. 월세를 놓은 ‘달방 있음’ 이다. 여인숙에는 나그네만 잠을 자는 것이 아니다. 여인숙에는 그 작은 방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장기 투숙객이 있다. 이곳에서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은 노숙자가 아니다. 집이 없거나, 장기간 집을 떠나 살거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집이 없다고 삶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초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서 내일의 희망을 쏘며 살고 있다. 희망이 그들을 속일지라도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 이렇듯 여인숙도 어떤 이에겐 집이 된다. 월세방의 우리말 표현인 ‘달방’ 이라는 단어도 눈에 띤다. 그 달방에서 매월 방세를 내며 한 달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눈에 선하다. 또한 이 거리의 여인숙들은 대문을 서로 맞대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 경쟁자이기도 하다. 문 앞에 욕실 완비, VTR 완비 등의 굵고 붉은 글씨들이 주인을 대신하여 대리전을 펼친다.
여인숙에도 엄연히 급이 있다
대리석은 바르지 못할지라도 나름대로의 품격이 존재하는 모텔
여인숙이 있는 거리와는 달리, 병무청안길에서 병무청 앞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모텔이라는 이름이 많다. 그 이름도 ‘S’, ‘Starvill’, ‘허브’ 같은 영어식이다. 건물은 4~5층 정도의 높이다. 입구엔 대형 유리문이 있고, 큰 간판을 높이 달아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새로 재개발하여 지은 건물들이다. 그 길은 여인숙 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다. 최소 소방 도로 정도의 너비는 된다. 이 모텔들은 큰 길가에 가깝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거리에는 술집도 있다. 그래서 골목은 현대식의 냄새가 난다. 벽은 시멘트로 되어 있고, 거기에 페인트를 칠했다. 현관 앞은 대리석보다는 화강암이나 타일 같은 재질로 장식해 놓았다. 주차 공간도 있고, 주차한 차를 외부인이 볼 수 없도록 부드러운 플라스틱 발을 늘어 놓았다. 그곳에는 모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큰 길에서 안쪽으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다. 슬래브 집들 사이로 모텔이 있다. 이는 주택가를 사서 재개발이나 재건축했음을 보여 준다. 주택들의 벽면에는 낙숫물을 받는 홈통이 있고, 도시가스 배관이 벽 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전기 계량기도 담벼락에 붙어 있다. 거리의 전봇대들은 듬성듬성 있으나 그 전선은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어지럽게 난무하는 전선이 우리네 삶의 양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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