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선생님과 함께하는 우리 동네 골목 탐방
작은 마을 골목길마다 생활 속 지혜가 깨알같이 숨어 있다
여름마다 울려 퍼지는 ‘슬로 시티와 전통의 속삭임
돌담1길의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창평들’이라고 부르는 마을의 남쪽 들녘이 나온다. 이 들녘은 창평이라는 마을이 한 시대를 풍미한 마을로 클 수 있도록 해 준 성장 동력이다. 창평들의 농업 생산력을 토대로 마을 주민들은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마을 유지들은 그 들녘의 한 곳에 ‘남극루(南極樓)’라는 이름의 누정을 세웠다. 이 누정은 들녘에 세워져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욱 커 보이고 우뚝 솟아 보인다. 특히 남극루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세워진 누정이어서 전통을 쫓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 그래서 이 누정은 마을의 상징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여름에 ‘창평, 한여름 밤 음악회’를 여는데, 2009년의 주제는 ‘슬로 시티와 전통 음악의 속삭임’이었다.
개구멍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배수구는 비가 올 때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아 주는 고마운 통로다
남극루를 멀리 앞에 두고서 마을 길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다시 돌담 2길로 이어진다. 돌담 2길은 마을 서쪽으로 돌아가는 길로서 돌담1길보다 더욱 원형을 갖춘 돌담을 가지고 있다. 때로 돌담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오는 경우 집안의 빗물이 집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집주인은 마당이나 텃밭의 낮은 곳으로 고랑이나 물길을 만든 후에, 거기서 가장 가까운 담의 밑에 물구멍을 만들어 두었다. 이것은 물이 빠져나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을 때에 그것은 개가 들락거리는 개구멍이 된다.
마을 길 어느 곳이든 깔려 있는 두 개의 콘크리트 판의 정체는?
그 위에 서서 눈을 감으면 청아한 개울물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마을 길의 어느 곳이든지, 그 가운데나 길옆에는 두 개의 직사각형 콘크리트 판이 있다. 이것은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마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것은 마을로 통하는 실개천을 복개한 흔적이다. 그런데 흐르는 물은 모래와 흙을 운반하기 마련이고, 물의 유속이 약한 경우 운반해 온 물질을 개천 안에 쌓아 두게 된다. 이렇게 해서 실개천에 토사가 쌓일 경우에는 콘크리트 판을 들어 올린 후에 그 안을 청소하거나 모래나 흙 등의 준설 작업을 해야 한다. 복개 판 시설은 생활 속 지혜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복개 판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통행의 편리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우리들의 실개천
이제는 다시 되찾아야 할 때
농촌에 자가용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고, 특히 농업의 기계화로 인하여 각종 농기계가 보편화되면서 좁은 마을 길을 넓혀서 통행의 편리를 도모하였다.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가장 적은 실개천을 복개하여 도로의 폭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주말에는 외지 사람들에게 마을 앞의 공동 주차장을 이용하게 하고 골목에는 자동차를 주차하지 않게끔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친수(親水) 공간을 제공하여 더 좋은 체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다시 말하여 콘크리트 복개 판을 걷어 내서 마을 실개천을 복원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도랑은 마을에 생명력을 주고, 그런 친수 공간은 사람들에게 모태의 양수 같은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차가 다니는 데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를 복원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야말로 이 마을이 진정한 느림의 도시, 즉 슬로 시티가 될 수 있게 할 것으로 생각된다.
지리 선생님의 카메라에 담은 삼지천 마을, 정말정말 궁금하시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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