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넝쿨과 어우러진 정겨운 돌담, 그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 삶의 명품 드라마들
지팡이 불끈 거머쥔 할머니의 느릿한 발걸음, 그 발걸음 따라 돌담길을 걸었다
돌담 2길에 있는 고정주(高鼎柱) 씨의 가옥을 지나서 ‘창평 어린이집’ 앞의 골목으로 가면, 순 돌로만 지어진 돌담이 나온다. 돌담은 둥근 돌을 올곧게 쌓아 올려서 단아한 멋까지도 보여 준다. 돌담을 지키는 사람도 마을에는 많지 않다. 멋들어진 돌담 아래에는 콘크리트 바닥이 있고, 그 위에 나뭇잎 몇 개가 떨어져 있다. 그 골목길을 힘들게 걸어가는 노파의 뒷모습이 눈에 잡혔다. 세월의 무게를 거머쥔 노파의 느린 발걸음이 우리 농촌의 현실을 웅변해 주고 있는 듯하다. 노파의 힘든 걸음을 보면서도 농촌을 관조의 눈으로 보는 나에게는 돌담의 풍광이 더 눈에 들어온다. 돌담에는 담쟁이넝쿨이 금상첨화다. 실제로 하얀 갈래꽃을 피우는 담쟁이넝쿨 꽃은 돌의 딱딱함을 보완해 주고도 남는다.
한국 사람 아니면 한옥에 반하지 말란 법이라도?
한옥이 좋아서 눌러 앉아 버린 독일 양반의 어색하지만 멋스런 한국화가 있는 곳
돌담의 담장 너머로는 서양식 굴뚝을 갖춘 한옥이 한 채 있다. 붉은 흙 벽돌로 쌓아 올린 굴뚝은 이미 담쟁이넝쿨에게 포위되어 있다. 담쟁이넝쿨로 포위된 한옥에는 독일 사람이 집을 빌려서 살고 있다. 이 집의 묘미는 입구에 있다. 입구에 대문은 없지만, 작은 담을 만들어 놓아서 집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다. 좌우로 살짝 돌아서 들어오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집이 밖에서 곧바로 드러남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 입구를 돌아서면 마당의 정원이 나오고 안채가 보인다. 그 집 마루에 걸터앉아서 앞집 용마루 너머로 보는 푸른 하늘은 산수화가 따로 없다. 그 푸른 눈의 집주인은 거기서 아마추어로 한국화를 그린다. 여름날에 찾은 방의 문들은 서까래 아래로 들어 올려져 있다. 여름날의 시원함이 있어서 좋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문에 창호지를 새로 발라서 보온과 방한을 하였다. 그러나 한옥의 창문을 보면서 이것이 가진 멋진 풍취보다는 겨울에 몹시 추웠다는 기억이 먼저 난다. 구들을 이용한 온돌 장치가 있긴 하지만 한옥의 겨울나기는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찬바람의 외풍을 잠재울 만큼 단열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인은 한옥의 안채를 서재와 작업실로, 그리고 사랑채를 거실로 사용하고 있다.
햇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태양초에는 주름진 할아버지의 구슬땀이 배어 있다
이 한옥을 돌아 나오면 돌담 길이 다시 이어진다. 골목의 양지바른 곳에는 비닐 멍석을 펼쳐 놓고 농산물을 말리고 있다. 말리는 농산물에는 토란, 벼, 고추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추다. 빨간 고추를 서로 겹치지 않게 멍석에 널어서 태양 빛을 머금은 태양초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태양초 고추는 농촌 가계에 목돈을 만들어 주고, 곱게 빻여서 멀리 객지로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질 것으로 보인다. 농촌의 노인들은 소일을 할 수 있어서, 돈도 마련할 수 있어서, 그리고 평생 해 온 일이어서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골목은 꽃과 어우러지면 더욱 보기에 좋다
골목은 꽃과 어우러지면 더욱 보기에 좋다. 꽃의 이름은 알 수 없어도 골목길 콘크리트 바닥과 벽의 돌 틈에 핀 꽃들은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하지 않더라도 보기에 좋다. 돌 틈에서 자라나는 키 작은 채송화, 좁은 틈에 화단을 만들어 가꾼 나무와 꽃은 사적 소유를 넘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눈길을 끈다. 돌담2길과 1길에서는 담장 너머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크고 화려한 모습의 나무와 꽃보다 한해살이로서 땅에 바짝 엎드린 작은 꽃에 눈이 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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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천 농촌 마을에는 전통적인 모습들이 보존되어 있다. 돌담 길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외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돌담의 경관과 함께 전통 가업인 한과와 쌀엿이 있고, 한옥은 현대 사회에서 전통을 지키는 경관이자 삶의 터로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곳은 농촌의 주택가에 형성된 골목길을 마을의 산업으로 연계시키고 있다. 전통을 지키는 것이 힘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돌담의 원형을 갖춘 곳이 흔하지 않기에 삼지천 마을의 골목길과 한옥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곳에서 농촌 지역의 골목길을 걷는 골목 투어를 하는 것은 전통을 새롭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슬로시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삼지천 마을의 골목길을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걸으면서 바쁜 도시 생활에 한 줌의 여유를 가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음 회를 끝으로 [골목길에서 마주치다] 칼럼이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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