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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골목길에서 마주치다] 칼럼을 마치며

by 푸른길북 2011. 4. 5.

더 빠르게, 더 넓게, 더 높게, 그리고 더 곧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골목은 위기에 처해 있다. 도시에서는 재개발이, 그리고 농어촌에서는 인구 감소라는 요인이 골목을 사라지게 하는 주범이다. 골목은 도시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골목은 "더 빠르게, 더 넓게, 더 높게 그리고 더 곧게"라는 세태에 밀려나 버렸다. 도시는 골목을 모두 밀어버리고 높디높은 아파트의 숲으로 변하고 있다. 사는 데 좀 불편하기는 했어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삶을 담아내 준 골목이 우리들로부터 사라지고,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골목은 사라져도 골목이 지닌 공동체 문화는 남아 있다

 

 

 

골목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지라도, 골목이 지닌 문화는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것은 골목의 공동체 문화다. 김용재는 "골목은 공동체 문화가 숨을 쉰다. 골목은 분명 한 집 한 집에 대한 경계를 짓고 있지만, 두 집이 공유하는 공동 공간의 기능도 한다. 옆집 마당과 우리 집 마당을 분명하게 구분하면서도 공유 공간의 연속성을 띠고 있다. 그러기에 사람의 접촉이 잦고 ''보다 '우리' 개념이 더 강하다. 골목은 사유 공간의 완충지대다. 골목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다. 공동체 문화가 숨을 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김용재,『이구백 시대에도 희망은 있다』, 신아출판사, 2008, 42)라고 했다. 그렇다. 골목에는 우리라는 공동체 개념이 있다. 골목은 딱히 가릴 것도 없이 더불어 사는 삶을 이어온 자들의 동지의식이 있는 곳이며, 끼리끼리 어깨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있는 곳이며, 작은 생명에도 눈길을 나누어 주는 따스함이 있는 곳이며, 함께 하는 삶은 더디지만 그 나름의 정겨움과 신바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동네다.

 

바람보다 먼저 누울 수는 있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생명력이 있는 그 곳, 골목길

 

 

 

골목에는 바람보다 먼저 누울 수는 있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그 질긴 생명력에 의지해서 당장의 생활이 힘겨워도 내일의 소망을 갖고 살아간다. 가파르고 좁은 길을 오가면서도 마음만은 세상과 미래와 소통을 나누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라는 인식을 가진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서 삶이 지치고 힘들지라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그들의 삶을 이어간다. 때때로 골목에는 거친 목소리도 있다. 순간적인 삶의 고단함으로 인한 일시적인 거침이다. 그렇기에 골목은 사람 사는 곳이다.

 

삶이란 가파른 계단길 중간에 걸쳐 있는 희망이라는 간판 같은 것

그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기 위해 오늘도 골목으로 나섰다

 

 

골목에도 일상이 있다. 어제의 일상이 오늘로 이어지고, 오늘의 일상이 내일로 이어진다. 잠자고 나면 아침밥 먹고 저마다의 삶터로 나가서, 해가 지면 다시 골목길을 따라 쉼터로 되돌아오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또한 골목에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다. 골목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다. 남들 사는 만큼 꼭 그 정도로 살아가는 삶이 골목에 있다. 그 모습을 보기 위하여 다시 골목으로 나선다.

 

삶의 모습을 나누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골목에서 이런 삶의 모습을 나누어준 분들께 감사하고 싶다. 마당에서 금방 담근 배추 김치에 돼지고기를 싸주시던 영산포 골목의 할머니들, 막걸리 한 사발을 사주시며 동네 안내를 기꺼이 해주시던 삼지천의 주민들, 검은 봉지 속에서 불쑥 감을 꺼내주시던 할머니, 시원한 물 한 사발을 떠주시던 담주리 골목길 입구에 사는 할머니, 마을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르시던 동네 모정의 할아버지들, 골목길을 넓혀 달라고 글을 써주길 바라던 천변리의 아주머니들, 나 같은 늙은 사람을 사진 찍어서 뭐하냐고 한사코 손사래를 치면서도 예쁘게 찍어달라고 하시던 말바우 시장의 아주머니들께 한없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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