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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골목길에서 마주치다-프롤로그

by 푸른길북 2010. 12. 7.

 

 

골목길에 우연히 접어들었다.

삶의 현상들을 보다 가까이서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고 골목길을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골목길은 그 공간적 특성과 골목이 주는 이미지, 골목의 추억, 그리고 실존적인 삶의 장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간적으로 골목은 좁은 길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다니기에 비좁고 자동차들이 다니기에는 더욱 비좁은 길이다. 최근에는 소방 도로를 내면서 폭이 좀 넓어졌지만, 여전히 골목길은 넓어야 1차로를 겨우 넘나드는 폭을 가진 길이다. 골목은 가교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공적 공간인 큰길이나 마을길과 사적 공간인 집과의 연계 통로 역할을 감당한다.

 

 

골목에는 담과 길이라는 공간 요소가 있다.
담은 별개의 건축 재료, 즉 벽돌, 돌, 흙 등을 종과 횡으로 쌓고 이어서 평면적 공간인 담벼락을 만들어 낸다. 평면인 담벼락은 그 위에 다양한 골목의 삶을 담아내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 그것은 표현의 대상이기도 하고 삶의 요소들을 담아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담과 담 사이가 길이 된다. 길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 통로다. 그 길을 통하여 사람도 문화도 함께 드나든다. 포장의 재료가 다르고 그 폭이 다르다. 길도 경사도가 저마다 다르고, 계단의 구조 형태도 다양하다. 그래서 골목은 직선이 아닌 곡선의 유형을, 그리고 규칙성보다는 불규칙성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계획은 사치스러운 것이다. 무계획성이 골목길의 본성이다.

 

 

골목은 미적 체험의 이미지를 가진 장소다.
나는 돌담과 계단과 길 등으로 구성된 삶의 현장의 영상미에 관심을 갖고서 사진 속에 골목길을 담았다. 골목이 역사적 텍스트인 한옥, 가게, 유물 등과 만나면 역사를 이해하는 장이 된다.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빠른 교통수단이 다닐 수 없는 곳, 곧 느림에 대한 미학을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골목길을 도시의 미적 공간으로 재생하고자 공공 미술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도시 골목의 길과 계단이 시각 미술과 조형 미술의 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골목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함의를 지닌 텍스트임에 틀림없다.

골목은 사회적 소수자이자 가난한 자들의 삶터이다. 용산 참사로 알려진 이들처럼 절박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생존 공간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택비용을 지불하고서 잠자리와 생활의 터전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내쫓기기가 일쑤다. 이렇듯 골목은 사회적 모순으로 인한 삶의 양태가 그대로 투영된 장소다.

나는 골목에서 아스라이 추억을 떠올리면서도 그것에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목도한다. 재래시장 골목, 여관 골목, 상가 골목, 주택가 골목, 공구상 및 금은세공업 골목, 홍어 포구 골목, 돌담 골목, 마을 골목 등을 찾아다닌다. 골목에서의 삶은 아마도 고만고만할 듯 하지만 골목 나름대로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같은 듯 하지만 서로 다른 현상들을 담은 골목을 보다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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